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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 역사

'이순신 장군 앞에 붙는 충무공(忠武公)의 뜻과 시호의 의미

by 날치자리 2021.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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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을 이순신 장군의 호로 잘못 알 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충무공은 이순신 장군님의 시호이다. 

충무공(忠武公)의 충은 충성충이요 무는 호반 무이며 공은 공변될 공이다.

호반 무자는 무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충무공의 뜻을 풀이하자면, '충성을 다해서 공을 세운 무인'이라는 뜻이고, 시호로 정해진다.

시호란?

시호는 왕또는 왕의 종친(왕족), 정 2품 이상의 문, 무관(훗날 정 2품 이하도 받음), 국가에 특별히 공이 많은 신하들, 또는 학문적 업적과 존경을 많이 받은 유학자에게 그들의 사후에 생전의 행적을 칭송해서 국가에서 추증해주는 이름을 뜻한다.

시호를 알고 죽은 사람은 없다.

시호가 죽은뒤에 추증된다고 해서 묘호와 혼동하면 안 된다.

묘호는 왕이 죽은 뒤에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붙이는 용도로 추증되는 이름이다.

예컨대, 우리에게 익숙한 세종대왕의 묘호는 "세종"이고, 세종대왕의 시호는 '장헌영 문예 무인 성명 효대 왕(莊憲英文睿武仁聖明孝大王)'이시다. 업적이 많으신 만큼 시호 또한 길다.

시호로는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가장 익숙할 텐데, 보통 "충무공=이순신 장군"으로 생각들 해서 오직 충무공은 이순신 장군만을 지칭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장수는 11분이나 되신다.

이 중 5분이 임진왜란을 겪으신 장군들이시다.

11분의 충무공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 예정!!

시호의 기원.

시호는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원 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대략적으로 주나라 주공(周公) 때부터 시호를 의논해서 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514년 신라 법흥왕이 즉위한 뒤 죽은 부왕에게 '지증(智證)'이라는 시호를 추증한 기록이 있다. 시호를 추증하는 것을 "증시(贈諡)"라 한다.

국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시호 도감(諡號都監)이 설치되어, 시호를 신중히 정하였다.

일반 관리들의 사후에 시호를 증시 할 때는 봉상시(奉上寺)라는 관청에서 시호의 추증을 주관하였다.

참고로 시호에 사용되는 글자는 194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후기에 봉상시에서 107자를 추가해서 301자를 사용하여 시호를 정하게 되었지만, 자주 사용되는 글자는 대략 120 여자 정도였다고 한다.

시호를 내린 목적은 신하의 선악을 구별해서 후대에 권장과 징계를 전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공을 세운 경우에만 시호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악하고 사나운업을 일삼았던 사람에게는 양(煬)·황(荒)·혹(惑)·유(幽)·여(厲)를 내렸다고 한다.

이 글의 첫머리에서 이순신 장군의 호에 대해서 잠깐 언급했다.

이순신 장군의 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이순신 장군을 지칭할 때 보통 "여해 이순신"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의 제목이기도 한 "여해 이순신"의 '여해"는 자(字)이다.

자가 무엇인지 역시 다음 포스팅에서.

이순신 장군님의 호로 알려져 있는 것은 "덕곡(德谷)", "기계(器溪)", "백암(白巖)" 등이다.

그 어느 것도 정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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